영화 <클라우스 아틀라스>의 감독 워쇼스키 남매를 알게 된 것은 <매트릭스>(이 때에는 워쇼스키 형제였음)의 유명세 덕분이었다. 이 때에도 빨간약 파란약으로 대표되는 인식에 관한 문제 제기가 동양의 철학관과 관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장자를 읽어보았던 것이 아닌가 지금도 생각한다. 이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윤회론적 세계관을 빌려왔는데, 당연히 불교의 영향을 떠올린다. 빌려왔다고 표현한 것은 이 영화는 윤회 그 자체에 관한 영화라기 보다, 윤회라는 (서양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개념과, 같은 배우가 시대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는 신선한 트릭을 통해서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에 일어났던 일이 중세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과 같은 영화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2013)

    Cloud Atlas 
    8.2
    감독
    앤디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톰 티크베어
    출연
    톰 행크스, 할 베리, 짐 브로드벤트, 휴고 위빙, 짐 스터게스
    정보
    SF, 액션 | 미국 | 172 분 |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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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더 자세히 그 반복을 살펴보자. 세대마다 나타나는 사건과 등장인물은 달라도 사건의 핵심적인 흐름과 핵심적인 역할의 인물들이 이루는 구조는 계속 반복하여 나타난다. 배우들은 비슷한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다른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으니 배우를 따라가선 안된다. 
    사랑하는 두 사람(남녀가 아니다) - 손미 & 장혜주, 로버트 프로비셔 & 덴홀름 캐번디시, 자크리 & 메로님 - 은 / 억압자 - 사령관, 유명 작곡가, 올드 죠지(Old gentleman은 악마의 다른 이름이라고 함) - 에 의해 억압당하고 / 결국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
    이들의 모험은 때로는 행복하게, 때로는 불행하게 끝나면서 다양한 차별 구조를 보여준다.

    '비누' 먹는 손미. 이 '비누'가 의외로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억압자들은 우생학을 밑바닥에 깐 차별을 말과 행동으로 실천한다. 흑인을 차별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클론을 차별하고, 노인을 차별한다. 

    '우리는 너희보다 우월하다.'

    이 6개의 에피소드는 나치 독일과 미국 독립전쟁, 그리고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는 수 많은 차별들도. 

    잠시 로마인 이야기의 세 번째 장 - 승자의 혼미로 넘어가보자. 이 때의 시대적 배경은 지중해가 로마의 내해가 된 이후, 도시국가 로마가 로마제국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로마는 패배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그 힘을 다시 확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멋진 민족이었다. 이런 관용의 민족이 부와 권력이 집중되면서 이에 대해 커지는 하층계급의 목소리를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 집단의 알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점은 언제나 정치인들의 숙제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치인은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에 속하기에 그 무게추가 거의 한쪽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 로마는 원로원과 2명의 집정관에 대한 권력의 집중을 호민관과 민회라는 형태로 평형을 유지하였는데, 시대와 경제, 군사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권력의 분배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3차 포에니 전쟁 이후 부의 재분배, 실업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서 하층민의 불만이 커지게 되었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많은 보통 사람들은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해간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존심은 복지로는 절대로 회복할 수 없다.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일자리를 되찾아주는 것뿐이다."

    법치국가에서 하층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평등에 다가서려면 결국 법의 개정이 필요한데, 법의 개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지배계급에서 나온다. 그들이 바로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 형제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평민층의 확대와 안정이었고 농지법을 개혁하여 부를 일정 부분 재분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일부 기득권자들은 손해를 본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두 형제는 모두 로마인의 손에 죽게되며, 로마는 혼란으로 빠져들어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 즉, 훗날의 동맹시 전쟁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로마의 기득권자들에게 있었다. 
    그라쿠스 형제 이후의 가이우스 마리우스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와 같은 지도자의 등장은 일시적 해법은 되었으나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는 실패하고 로마는 결국 카이사르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

    그라쿠스 형제


    이 일련의 로마 역사에서 우리나라의 현재를 떠올리는 이유는 아마도 워쇼스키 형제가 영화를 만든 계기와 통하는 데가 있을 것이다. 로마가 겪었던 내홍을 우리도 지금 겪고 있기에 과거의 역사에서 배워서 더 좋은 미래를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자문자답 하자면, 쉽지 않다. 이 결론 역시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동생 그라쿠스의 개혁이 평민층의 지지를 얻게 되자 로마의 기득권층은 이를 꺽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펼친다. 역사적으로 그 효용이 증명된 바로 그 작전, 흑색선전. 그리고, 비슷한 정책을 내세워 물타기와 포률리즘 동시 상영. 기득권의 이미지 세탁. 그리고 마침내 이들 작전을 통해 가이우스 그라쿠스를 몰아낸 이후에는 다시 예전으로 복귀. 역사는 되풀이된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결말이 항상 해피엔딩이 아닌 것은, 그리고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세대의 이야기인 자크리과 메로님은 해피엔딩인 것은 이런 역사의 흐름을 시사한다. 

    모든 차별에 대한 저항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랑의 힘'으로 차별을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Posted by 한의학박사 & 한방내과 전문의 김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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